총론

한미 FTA를 해서는 안 되는 이유

    2 차 대전 후 1960년대까지 절대적 헤게모니를 구가하던 미국은 1970년대 이래의 장기불황을 거치면서 패권적 지위의 약화를 겪게 된다.  달러의 가치 하락으로 인한 브레턴우즈 체계의 붕괴, 제3세계 민중운동의 활성화로 미국의 헤게모니 약화가 심화되면서 경제적 측면에서 유럽과 일본이 급부상하는 다극화 시대가 도래하고, 미국의 헤게모니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자본의 축척모델도 위기에 빠진다.  이러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자본과 미국의 대응은 자본의 국제화, 초국적 금융자본의 등장, 신자유주의 도입으로 나타난다.  미국이 1980년대 중반부터 추진한 공격적 일방주의와 FTA 확산정책은 바로 미국 자본의 축적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전략의 연장선에 있다.  이는 쌍무협상을 통해 해외 시장을 확보하고 제3국의 경쟁을 배제하여 미국의 특정 산업집단을 위한 지대를 창출하고, 전통적인 상품 무역의 자유화보다는 투자에 대한 보호와 서비스, 농업 분야의 개방, 지적재산권 보호의 강화 등 비상품 영역의 시장 확대를 목표로 한다.


    이 처럼 미국이 의도하는 FTA는 단순한 상품의 무역 협정이 아니라, 경제와 사회의 모든 분야를 포괄하는 ‘경제통합’ 협정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세계지배전략의 일환으로 배치된 정치적 사회통합 협정이다.  미국의 이러한 치밀한 전략에 비해 한국 정부는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그것도 근거없는 수치만 제시한 채 군사작전 하듯 밀어붙이고 있다.


    한 국 정부가 미국과 FTA를 체결하면서 내세운 것은 미국은 세계최대의 시장이므로 한미 FTA는 양국간 교역을 확대하여 우리경제의 성장률을 높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막연히 주장하는 장밋빛 미래에 대한 실증적 근거를 찾기 어렵다.  사실상 가장 체계적인 한미FTA 경제효과 보고서라 할 미국제무역위(USITC) 2001년 보고서의 줄거리는 이렇다.  한미 공히 GDP나 고용 등에 그렇게 큰 영향은 없지만(한국 GDP 성장률은 0.7%로 예측) 적어도 FTA 체결 4년 후면 미국이 대한 무역흑자국으로 된다.  다시 말해 미국에 훨씬 더 큰 실익이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는 미국과의 FTA를 체결하기 위하여 지난해 10월 30일 약값 재평가 제도 개정을 중단하였고, 같은 해 11월에는 자동차배기가스 허용기준 강화조치를 수입차에 대해 2년간 유예하는 조치를, 올해 1월 13일에는 광우병 파동 때 수입금지된 쇠고기의 수입 재개를 발표하고, 같은 달 26일에는 스크린쿼터를 146일에서 73일로 축소함으로써 미국의 4대 요구 조건을 모두 다 들어주는 굴욕적 사전 조치를 취하고, 본격 협상에 들어갔다.


    반 면 한미간 FTA체결로 인하여 한국에 혜택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4대 재벌기업에 주로 집중되고 그 폐해는 모두 사회적 약자인 농민과 노동자, 중소 제조업체에게 돌아올 것이 자명하며, 노동3권, 식량주권, 문화주권, 환경주권, 사법주권, 교육, 국민건강권은 미국의 일방적 패권주의와 신자유주의 세계화, 초국적 자본의 경제침탈 전략에 희생될 것이다.  한미FTA는 경향적으로 무역수지적자, 금융투기화와 종속, 서비스산업 적자심화, 공공부문의 민영화와 질적 저하, 농업공황, 영화를 비롯한 문화산업위기, 대미 군사안보 종속의 항구화 등의 전망을 가능케 한다.  이는 결국 사회 양극화의 심화로 이어져 사회는 불안정해 질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한미 FTA 체결에 강력히 반대한다.


    더 구나 협상 의제도 국민들에게는 철저히 비밀로 하면서 밀실협상을 자행하고 있다. 국민 전체의 생존에 직결된 문제를 의회나 국민의 통제를 전혀 받지 않고 행정공무원 몇 명이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은 민주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위헌적인 행위이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협상의제를 공개하는 한편, 국민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여 한미FTA의 협상 여부에 대한 결정부터 다시 해야 할 것이다.

무역자유화와 지적재산권

    지 적재산권 제도는 무역자유화를 위한 제도가 아니다.  기술의 혁신과 문화․예술의 발전을 위해 창작자에게 한시적인 독점권을 인정하는 것 뿐이다.  그리고 지적재산권의 보호를 강화해야 무역자유화가 가능한 것도 아니다.  세계은행과 옥스퍼드 대학이 함께 펴낸 보고서1)에 서도 혁신적 기술에 대해서는 지적재산권이 무역 흐름에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주며, 이러한 결과는 처음 기대와는 다른 것이어서 놀랍다고 표현할 정도이다.


    지 적재산권을 무역과 연계시킨 것은 미국이 세계 패권을 회복하고 자본의 위기를 극복하려는 치밀한 전략의 일환이다.  미 국은 지적재산권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통상 정책에 지적재산권을 연계하고 이것을 다자 협정과 양자 협정을 통해 상대국에 강요하는 방식을 택하였고 그 직격탄을 맞은 것은 한국이다.  1986년 한국의 지적재산권 제도가 전면 재편되는데, 이것은 레이건 행정부가 한국의 지적재산권 침해에 대한 미통상법 301조 조사권을 발동하면서 생긴 결과이다.  당시 “전승국이 패전국으로부터 노획물을 독점하는 것과 같다”는 조롱에 가까운 비판을 받았던 한미간의 지적재산권 협상 결과로 인해 한국의 지적재산권 제도는 미국의 문화 자본과 제약 자본들이 만든 지적 ‘상품’의 무역자유화를 위한 내용을 전면 수용한다.  그 결과 지적재산권 제도에서 권리자와 일반 공중 사이의 균형은 법의 서문을 장식하는 수사로 전락하였으며, 한국 사회 내부의 합의를 통해 창작물 보호 제도를 만들 기회는 박탈당했다.


    정 부는 지적재산권과 관련하여 협상 의제나 정부의 입장과 전략 등을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에서 지적재산권 문제가 주요 이슈 중의 하나가 될 것이라는 점은 명확하다. 협상 개시를 선언한 지난 2월 2일,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미국 의회에 보낸 서신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에서 지적재산권 보호에 대한 폭넓은 요구를 한 바 있다. 또한 미국 재계의 입장을 담고 있는 ‘주한미상공회의소 2005 정책보고서’에서도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4가지 요구사항 중 하나로 ‘디지털 지적재산권 침해를 중심으로 지적재산권 보호 및 단속 강화’를 포함하고 있다.  


    지 적재산권은 산업상 이용가능 한 발명에 독점권을 부여하는 특허권, 문화 예술 창작물에 대한 배타적 권리를 부여하고 있는 저작권을 비롯하여 상표권, 영업비밀 등 다양한 독점권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지적재산권 제도는 한 사회의 기술, 산업의 발전과 문화의 증진에 큰 영향을 미치며, 정보화가 진척될수록 그 영향력은 커지고 있다.  그러나 독점배타적 권리의 부여를 기본 원리로 하는 지적재산권의 특성상 지나친 권리의 강화는 오히려 지식과 문화에 대한 접근과 유통을 과도하게 제한함으로써, 문화적 권리나 정보 접근권과 같은 기본적 권리와 충돌하며 공공성을 침해하게 된다.  특허로 인한 의약품 독점과 같이 인간의 생명과 건강권에 대한 위협이 되기도 한다.  대다수의 지적재산권이 초국적 자본의 소유와 통제 하에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지적재산권은 사실상 창작자들의 이익보다는 초국적 자본의 독점을 강화하는 데 이용되고 있다.


    한 국은 이미 세계무역기구(WTO)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TRIPS)을 비롯한 세계적인 주요 지적재산권 협정에 가입이 되어 있으며, 지적재산권 권리자에 대한 보호 수준이 국제 협정에서 요구하는 수준보다 전혀 낮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국제 협정들은 초국적 자본의 이해가 과도하게 관철되어 그 보호 수준이 지나치게 높고 문화적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비판받고 있다. 지난 2003년과 2005년에 개최되었던 정보사회세계정상회의(WSIS)에서도 대다수의 시민사회단체들은 현행 지적재산권 체제가 과도하게 권리자의 독점적 이익의 보장에 편향되어 있어, 이용자의 권리 및 공공성의 보장과 균형을 맞출 수 있도록 변혁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또한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에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등 제3세계 국가들이 중심이 되어 ‘개발 의제’ 수립을 제안하면서, 지적재산권이 각 국의 개발을 촉진하는 데 복무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국제협정에서 규정하고 있는 이상으로 한국의 보호 수준을 높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미국의 요구는 초국적 자본의 이해를 대변할 뿐이라고 생각하며, 한국 민중뿐만 아니라 미국 민중의 이해와도 상반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편, 한국 정부는 지적재산권을 강화하는 것이 굳이 미국의 요구가 아니더라도 우리 경제를 위하여 필요한 것인양 주장한다.  그러나, 오로지 산업정책적 관점에서 지적재산권 문제를 바라보더라도 과연 미국의 요구대로 계속해서 지적재산권 및 그 집행을 강화하는 것이 우리 경제 발전에 필요한 것인지 의심스럽다.  우리나라의 산업구조가 미국의 그것과 상이하고 지적재산권의 보유 수준에서도 현격한 차이가 있어, 미국과 동일한 수준에서 지적재산권 정책을 시행하는 것은 맞지 않다.  미 국 법무부의 지적재산권실무단(Task force on Intellectual Property) 보고서(2004년 6월)에 따르면, 2002년 미국 저작권관련 산업(도서, 신문, 영화, 음악, 텔레비전 쇼, 컴퓨터프로그램 등)이 미국의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6%이며, 그 총액은 6266억 달러로 이는 호주, 아르헨티나, 네덜란드, 타이완의 총 GDP를 넘는 규모이다.  2002년 당시 한국의 GDP는 5469억달러이므로,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보다도 약 800억달러나 더 큰 엄청난 규모이다.  또한, 저작권관련 산업에 고용된 인원수는 548만명이고 전체 미국 노동력의 4%에 해당한다.  1997년부터 2002년까지 저작권 관련 산업에서는 전산업 평균 고용성장율인 1.05%보다 27%가 더 큰 1.33%의 고용성장률을 기록했다.  수출량도 2002년에 892.6억 달러로서, 화학, 식품, 육류, 자동차, 항공기 등의 다른 산업분야를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2006년 3월 세계무역기구의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이 2004년 한해에 지적재산권 로열티만으로 벌어들인 수입이 513억달러에 달한다.  이는 미국에서 지적재산권의 보호수준이나 법 집행의 강화를 요구하는 분명한 이유가 된다.


    반 면 세계은행은 지적재산권을 국제기준에 따라 강화했을 때 가장 손해보는 국가로 한국을 지목했다(약 153억 달러 적자).  우리나라의 경우 2002년 무역수지는 53.94억 달러 흑자를 기록했으나, 서비스 수지는 82억 달러 적자로 나타났고, 이 중 29억 달러 정도는 지적재산권에 대한 로열티로 지급된 것이다.  한국 정부의 관료들은 한류를 들먹이면서 막연히 지적재산권을 강화하는 것이 국민 개개인의 이익으로 돌아갈 것처럼 광고하는 것을 중단하고, 그 효과를 실증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국내법 개정을 통하든, 조약의 체결에 의한 간접적 수단을 통해서든 지적재산권을 만연히 강화하는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


1) The International Bank for Reconstruction and Development / The World Bank, “Intellectual Property and Development, Lessons from Recent Economic Research”, Copublication of the World Bank and Oxford University Press (2005년) 중 Carsten Fink and Carlos A. Primo Braga, “How Stronger Protection of Intellectual Property Rights Affects International Trade Flo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