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적 보호조치

    (가) 기존 조약 및 현행 저작권법 규정


    현 재 세계지적재산권기구 저작권조약 및 실연·음반조약에서는 “체약국은 이 조약 또는 베른협약상의 권리의 행사와 관련하여 저작자가 이용하는 효과적인 기술적 조치로서 자신의 저작물에 관하여 저작자가 허락하지 아니하거나 법에서 허용하지 아니하는 행위를 제한하는 기술적 조치를 우회하는 것에 대하여 충분한 법적 보호와 효과적인 법적 구제 조치에 관하여 규정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 저작권법에는 기술적 보호조치를 “저작권 그 밖에 이 법에 의하여 보호되는 권리에 대한 침해 행위를 효과적으로 방지하기 위하여 그 권리자나 권리자의 동의를 얻은 자가 적용하는 기술적 조치”(제2조)로 정의한 뒤, “정당한 권리없이 저작권 그 밖에 이 법에 의하여 보호되는 권리의 기술적 보호조치를 제거·변경·우회하는 등 무력화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기술·서비스·제품·장치 또는 그 주요부품을 제공·제조·수입·양도·대여 또는 전송하는 행위는 저작권 그 밖에 이 법에 의하여 보호되는 권리의 침해로 본다.”(제92조 제2항)고 규정하여 기술적 보호조치의 우회수단 제공행위를 저작권 침해로 의제하고 있다.


    저 작물에 대한 접근은 저작권에 의해 통제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저작권자로서도 저작물에 대한 만인의 접근 자체를 막을 법적 권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저작권은 저작물의 복제나 전송 등 저작물의 특정한 이용행위를 허락하거나 금지할 저작자의 권리를 의미하는 것이므로, 저작권자는 저작물의 이러한 특정 이용행위만을 금지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위 저작권조약에서 기술적 조치를 “이 조약 또는 베른협약상의 권리의 행사와 관련하여 저작자가 이용하는” 것이며 “자신의 저작물에 관하여 저작자가 허락하지 아니하거나 법에서 허용하지 아니하는 행위를 제한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음에 비추어 볼 때, 위 조약의 규정은 우리 저작권법이 반영하고 있듯이 저작물에 대한 이용을 통제하기 위한 기술적 조치의 우회행위를 금지하는 취지로 보아야 한다.


    (나) 미국법 및 미국 FTA 중 관련 규정


    반 면, 미국 저작권법(DMCA)은 기술적 조치를 접근통제적 조치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규정한 뒤, 접근통제적 기술적 조치를 직접 우회하는 행위와, 접근통제적 기술조치 및 이용통제적 기술조치의 우회수단 제공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미국이 체결한 FTA에서도 미국법에 따라 위 조약의 수준을 뛰어 넘는 과도한 금지를 설정하고 있다.  대신 미국법에서는 기술적 보호조치를 우회할 수 있는 8가지 예외를 두고 있는데, 예컨대 호환성 연구를 위한 제한된 리버스엔지니어링, 보안연구, 암호화 및 그 해독에 관한 연구, 정보수집이나 법집행 목적의 정부 행위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예외는 매우 제한적이고 애매모호하게 규정되어 있어서 도대체가 어떠한 행위가 허용되고 어떠한 행위가 금지된 것인지 조차 명확하지 않다.


    (다) 기술적 보호조치 우회 금지 및 미국식 규정의 문제점


     저작권 보호범위의 우회적 확대


    DVD 플레이어에는 일정한 지역코드가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지역코드가 ‘1’인 DVD 플레이어에는 그러한 코드에 맞는 DVD 타이틀만 재생된다.  우리나라에서 구입한 DVD 플레이어는 지역코드가 ‘3’이며, 지역코드가 ‘1’인 미국에서 구입한 DVD 타이틀을 재생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렇게 지역코드가 삽입된 배경은 영화사들이 지역별로 영화배급 시기를 통제하기 위하여 그러한 DVD 표준을 요구하였기 때문이다.


    그 러나 다지역(multi-region) 플레이어를 제조하여 판매하는 것만으로는 죄가 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플레이어도 시판되고 있다.  미국 영화업계는 일정한 지역코드의 DVD를 다지역 플레이어에 넣어 재생하면 기술적 보호조치의 우회행위로서 DMCA에 위반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저작물을 단순히 읽거나 듣거나 보는 것은 저작물에 대한 ‘접근’ 행위로서 이는 저작권법에 의해 금지되지 아니하므로, 접근을 통제하기 위하여 저작권자가 기술 조치를 취하더라도, 이것을 우회하는 행위를 저작권법에서 금지하여 처벌해서는 안된다.  접근통제적 기술조치의 우회행위까지 금지한다면 저작권자에게 저작물에 대한 접근을 통제할 권한을 인정하는 결과를 초래하여, 저작권의 보호 범위를 확대하는 이상한 결과를 초래한다.  땅주인이 둘러친 울타리를 넘는 행위를 법에서 금지한다면 이는 그 땅에 대한 소유권을 보호하기 위함일텐데, 그 땅보다 넓게 둘러친 울타리를 넘어 들어갔다고 하여 그 땅에 미치지도 않았는데 이를 처벌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그 소유를 넘는 울타리는 공공영역을 축소하거나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울타리를 거두라고 요구할 권리가 다른 타인에게 존재한다고 보아야 옳다.


     법정허락 및 공정이용 무력화


    우 리 저작권법에서 인정하는 이용 통제 기술적 보호조치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땅에 대한 소유권도 일정한 경우 제한된다.  울타리가 있다고 하여도 그 땅을 통행할 권리를 타인에게 보장하는 경우도 있고, 이웃사람들의 수도, 전기 시설 공사를 위해서 땅 주인이 수로나 전기줄의 통과를 용인하여야 하며, 토지측량 등을 목적으로 땅 주인의 허락없이도 그 땅을 드나들 수 있고, 그린벨트나 자연보호구역을 지정하여 토지 개발을 제한하기도 한다.  저작권을 보호한다고 하여도 일정한 경우 공정이용이라 하여 그 권리를 제한한다.  개인적이고 비영리적으로 저작물을 복제하는 행위나, 비영리적 공연, 학교에서의 저작물 사용, 도서관의 저작물 이용, 일정한 범위 내에서 저작물의 인용 등 일정한 경우에는 저작권자의 허락없이도 저작물의 이용이 가능하도록 법에 규정하고 있다.  또한 일정한 경우에는 보상금을 공탁하고 법정허락이 가능하기도 하다.  그러나 이용통제 기술적 보호조치의 우회행위를 처벌하게 되면, 이렇게 허용되는 범위에서 저작물을 이용하기 위해 기술적 보호조치를 우회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도 처벌될 여지가 있어, 저작권 제한이나 법정허락제도를 무력화하여 결국은 접근통제적 기술적 보호조치와 같이 저작권 보호 범위를 우회적으로 확대하는 결과가 된다.


    따 라서, 이용통제적 기술적보호조치의 우회수단 제공행위를 금지하더라도, 다시 그에 대한 예외를 정하거나 또는 권리자로 하여금 ‘공정이용’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기술적 보호조치를 해제하여 저작물을 제공할 의무를 저작권자에게 부담시킬 필요가 있다.


     접근통제적 기술적 조치의 직접 우회행위 금지에 따른 추가 문제


    미 국의 저작권법에는 접근통제적 기술적 조치의 경우 우회수단 제공행위 만이 아니라 우회행위 자체를 금지하고 있다.  또한 그러한 직접 우회행위는 알고서 고의로 하는 행위만이 아니라 모른 데 과실이 있는 행위까지도 금지된다.  이 규정의 해석과 관련하여 과실(過失)행위까지 금지하는 이유가, 인터넷서비스제공자(ISP)나 웹호스팅 업체에게 이용자들의 우회행위에 대한 2차적 책임을 부담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접근통제적 기술적 조치의 직접 우회행위는 그 자체가 저작권 침해가 되거나 침해를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기 때문에, 해킹방지나 개인정보보호의 차원에서 별개의 법으로 금지하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저작권법으로 금지할 것은 아니다.  설령 이를 금지하더라도 과실행위까지 광범위하게 금지하는 것은 저작물 이용자뿐만 아니라 하드웨어업체나 ISP에도 불측의 손해를 발생시킬 우려가 있다.


    (라) 미국식 규정에 대한 반대


    기 술적 보호조치의 우회행위를 제한할 필요성이 있다고 하여도, 이로 인하여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저작권 보호범위가 확대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따라서 기술적 보호조치의 우회행위는 그것이 저작권 침해를 조장하거나 초래하는 경우에만 금지되어야 하며, 이를 위하여 이용통제적 기술적 보호조치가 취하여진 경우에도, 이른바 공정이용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저작권자로 하여금 기술적 보호조치를 해제할 의무를 부담시켜야 한다.  유럽연합 지침에서는 저작권 제한 사유에 해당하는 경우 저작권자가 복제본을 제공할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그 러나 미국의 규정은 이러한 정당한 사용을 보장할만한 수단을 제공하지 않으며, 몇몇 판례가 예외를 인정하기는 하나, 원칙적으로는 접근통제적 기술적 보호조치 우회행위까지 무분별하게 처벌대상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공정이용을 보장할 수 있는 수단의 보장, 접근통제적 기술적 보호조치 우회행위의 허용이 보장되지 않는 한, 미국 규정을 수용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