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공익 위협할 ‘저작권 독점’ / 우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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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고] 공익 위협할 ‘저작권 독점’ / 우지숙 (한겨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지적재산권(지재권) 분야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국내의 다른 법제도와 충돌할 뿐 아니라 저작물의 생산·유통·이용 사이의 균형을 심각하게 깨뜨릴 수 있는 내용들이 드러나고 있다. 정부는 이를 ‘제도의 선진화’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저작권 제도의 개념과 원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주장이다.

저작권 제도의 목표는 적정한 창작 유인을 제공함으로써 문화 환경을 풍부히 하는 것이다. 저작권자에게 보상하는 것은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전통적으로 저작권법은 공공의 이익에 부합되도록 저작자에게 ‘제한된 독점권’만을 부여해 왔다. 제한된 기간에만 법으로써 보호하며, 사적·공익적 사용은 허용하며, 간접침해자의 책임은 제한적으로만 인정한다는 원칙 등을 통해서다. 그런데 자유무역협정 협상 결과는 이러한 원칙들을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우선 저작권 보호기간을 저자 사후 50년에서 70년으로 연장한 것은 저자에게 영구 권리를 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미 창작된 저작물에 소급적용되므로 저자에게 새로운 창작의 유인을 주지 못하면서 보상만 늘려주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보호기간 제한의 원리가 무너짐으로써 공공의 영역에 귀속되는 저작물이 줄어들고 새로운 창작물이 활성화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드는 것이다.

허가받지 않은 저작물이 유통되면 해당 인터넷 사이트에 책임을 물어 폐쇄까지 할 수 있게 한 부속서의 내용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다. 저작권자의 권리 행사를 도우려고 저작물이 이용되는 매체 자체를 없앤다면 문화 환경이 위축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이번 협상은 우리 국민의 프라이버시권도 소홀히 다뤘다. 저작권자가 요청하면 국내 법기관의 명령 없이도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가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제공하도록 했다. 재산권을 인권보다 우선시하겠다는 것이다. 기득권자의 독점권을 보장하기 위한 정부의 기능은 강화하고 절차적 정당성과 공공의 이익을 위한 정부의 기능은 축소하는 것이 자유무역협정의 기본 태도다. 이것이 과연 선진제도인가 아니면 오히려 후진적인 제도인가.

최근 들어 미국에서 저작권 보호가 강화된 것은 디지털 환경에서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콘텐츠 제작자들이 법원에서 힘겨루기와 의회 로비에 성공함으로써 나타난 결과다. 이들은 인터넷회사, 소프트웨어 개발자, 이용자들을 상대로 공격적인 소송들을 계속해 자신들의 권리를 확대하는 판례 규범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나아가 이를 의회에서 법령화하도록 엄청난 로비력을 동원한 바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저작권법을 전세계적으로 확대해 왔고 국제기구나 세계무역기구(WTO) 다자 협상에서 관철하지 못한 부분을 양자 협상을 통해 성취한 것이 자유무역협정 협상의 결과다.

결국 저작권의 강화는 합리적·경험적 근거보다는 관련 업계의 상업적 이해관계에 따라 급속히 진행되어 온 것이며 미국 내에서도 비판이 만만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유관 부처에서는 지적재산권 제도에 대한 몰이해 때문이든, 부처의 이해관계 때문이든, 저작권을 강화하는 것이 곧 선진제도라는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여 재생산해 왔다. 외교통상부는 또한 이번 협상에서 지적재산권을 단순히 경제통상 이슈로만 접근하여 저작권 제도의 근본원칙을 뒤흔드는 결과를 내고 말았다. 이제 공익을 위한 독점 제한의 원칙 자체가 우리 저작권법에서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다.

우지숙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admin – 월, 2007 – 06 – 11 08: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