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공공제도가 기업이익에 따라 흥정대상이 되는 한미 FTA 협상은 중단해야 한다.
공공제도가 기업이익에 따라 흥정대상이 되는 한미 FTA 협상은 중단해야 한다.
- 한국정부가 의약품협상 ‘파행’에 대해 취할 태도는 협상단 부분철수가 아니라 협상중단 -
한미FTA 2차 협상에서 한국의 약가정책이 협상의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미국 협상단 대표 웬디 커틀러는 일부 협상단을 퇴장시키는 초강수를 던지면서 한국 정부가 도입하기로 발표한 의약품 선별등재제도(포지티브 리스트)는 혁신적 신약을 차별하고 그 결과 한국의 환자와 의사들이 신약에 접근하는 것을 제한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미국정부는 이후 2개 분과 협상장에서 협상단을 철수시키고 한국정부도 상품부역분과 및 환경분과에서 협상단을 철수시키는 '협상파행'이 연출되었다.
우리는 우선 의약품의 선별등재제도에 대한 양국정부의 태도에 대해 지적하고자 한다. 의약품선별등재제도는 이미 많은 OECD 국가에서 시행되고 있다. 미국의 주장처럼 이 제도가 혁신적 신약을 차별하거나 환자들의 의약품 접근권을 제한했다면 이미 오래 전에 폐기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나라에서도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 미국 협상단의 태도는 국민의 건강을 위해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보건의료정책을 수립하여 시행해야 하는 한국 정부의 헌법적 의무를 무시한 채 자국의 제약사의 이해만 대변하여 신약의 가격을 높게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미국의 퇴장전술 구사는 협상에서 유리한 지위를 점하기 위해 한국 국민의 건강권을 위협하는 것으로 비난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또한 4대 선결과제라는 명목으로 약가정책을 수정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여 미국에게 빌미를 제공한 한국 정부가 더 큰 비난을 받아야 함이 마땅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번 양국정부의 협상장에서의 퇴장이 본질적인 문제를 가리려는 계산된 연출이라는 점이 더욱 큰 문제라고 판단한다. 미국정부가 한국의 약가 제도를 들먹이며 협상장에 나타나지 않는 것은 이를 통해 의약품분야의 다른 요구사항 및 다른 분야의 양보를 얻어내려는 협상전술로 판단된다. 다국적제약사는 양국정부가 합의한 투자자 대 정부 제소권을 통해, 그리고 추후 지적재산권에 대한 비위반제소가 인정되면 이를 통해, 굳이 선별등재제도를 지금 철회시키지 않더라도 한미FTA가 체결된 후 언제든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여 손해배상을 받아 내거나 제도를 철회시킬 수 있다. 또한 의약품 특허기간연장 요구나 이의제기기구의 설치 요구가 받아들여지면 선별등재재제도의 의의는 매우 제한적이 되어 무늬만의 포지티브리스트 제도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 단일 특허의약품에 대한 약가협상은 한계가 매우 클 수밖에 없고 여기에 이의제기기구 등 다국적 제약사의 간섭절차를 상시화하면 선별등재제도의 의미가 거의 없어지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정부의 협상장 퇴장은 선별등재제도에 대해 큰 양보를 하는 양 모양새를 취하면서 약가정책에 미국 다국적 제약사가 개입하려는 절차 마련과 특허 의약품의 기간 연장, 의약품 허가 과정의 특허 연계 등을 얻어내려는 협상전술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한국정부가 이미 투자자 대 정부 제소제도를 합의한 마당에 협상단을 일부 퇴장시키는 것도 대국민용 연극으로 보이는 것 또한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의약품분야 협상의 파행이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본질을 보여주는 것으로 판단한다. 국민의 이익을 위한 공공제도가 FTA 협상단계에서 벌써 다국적 기업의 이익에 따라 흥정과 협상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미 FTA 협상이 체결된다면 투자자보호조항과 투자자 대 정부 제소권을 통해 이러한 일은 상시적인 일이 될 것이다. 한미 FTA는 모든 공공제도가 기업의 이익에 따라 재단되는 협정이다. 양국정부는 속이 들여다 보이는 '쇼'를 멈추어야 한다. 기업의 이익이 사회의 이익과 공공제도보다 우선되는 한미 FTA 협상을 당장 중단하라.
2006.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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