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칙에 대한 의견

    지 적재산권은 무역에만 관련된 것이 아니라, 한 사회의 과학기술, 문화, 예술, 산업, 경제, 인권 등 다양한 분야와 관련이 있다.  따라서 자유무역협정에서 지적재산권의 실체적 내용을 규정할 때에는 무역 이외의 분야에 미칠 영향을 충분히 고려하여야 하며, 우리 헌법과 국제 인권규범에서 보장하고 있는 여러 기본권이 제약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한, 지적재산권 제도는 창작자의 권리만 보호한다고 하여 곧바로 제도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적창작물의 사회적 이용과 창작자의 권리가 절묘한 균형을 이루어야만 비로소 제도의 목적이 달성될 수 있다.


    그 런데, 미국이 다른 나라와 체결한 FTA에는 지적재산권 제도가 반드시 추구해야 하는 ‘균형’의 문제와 무역 이외의 다른 분야에 미칠 영향에 대한 고려가 전혀 들어 있지 않다.  예컨대, 미호주 FTA는 지적재산권 부문의 총칙에 ‘이행 의무’, ‘국제조약 가입 및 비준 의무’, ‘내국민대우’, ‘보호대상에 대한 소급 적용’만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지적창작물을 자본가적 기술자․창작자의 산물로만 취급하여 ‘상품’과 동일한 차원에서 접근한다면, 지적재산권 제도가 과학기술의 발전이나 문화․예술의 진흥을 오히려 방해하는 왜곡된 제도가 될 것이므로, 최소한 다음과 같은 내용이 지적재산권의 총칙 부분에 포함되어야 한다.


    (1) 목적과 원칙 규정


    지 식과 정보를 재산권에 준하는 형태로 보호할 필요성 이상으로 누구나 자유롭게 지식과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공공영역(public domain)을 확대하고 보존하는 것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지적재산권 제도의 목적이 창작의 장려라고 할 때, 이러한 목적은 기술자, 발명가, 학자, 예술가, 저자들이 새로운 창작에 필요한 자원을 풍부하게 만드는 공공영역의 확보로부터도 달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공영역의 확보와 보존은 지식에 대한 접근권 보장과 기술혁신․지적창작 활동의 근간으로서, 지적재산권 제도의 중요한 목적이 되어야 하며, 지적재산권에 대한 국가간 협정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한 편, 지식과 정보에 대한 자본의 통제를 지구적 차원에서 강화하고, 미국을 비롯한 일부 선진국이 개도국들의 부를 빼앗는 수단이라는 비판을 받는 트립스 협정조차도 권리 의무의 균형이나 공익을 보장하기 위한 주권국의 조치를 존중하고 있다.  즉, 트립스 협 정 제7조는 “기술 지식의 생산자와 사용자에게 상호 이익이 되고, 사회 복지와 경제 복지를 이끄는 방법으로, 그리고 권리와 의무가 균형을 잡도록 기여하여야 한다”는 점을 협정의 목적으로 정하고 있다.  이것은 트립스 협정의 목적이 기술 소유자의 권리와 의무 사이의 균형과 기술 지식의 생산자의 이익과 사용자의 이익 사이의 균형을 목적으로 하면서, 이 보다 더 상위 목적으로서 사회 복지와 경제적 복지를 증진하는 것을 채용하였음을 의미한다.  또한, 트립스 협정은 이러한 균형을 이루기 위해 제8조에서 “회원국은 자국의 법률 및 규칙을 제정하거나 개정하면서 공중보건 및 영양을 보호하고, 자국의 사회경제적 발전과 기술적 발전에 매우 중요한 부문에 대한 공공이익을 증진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채택할 수 있다”는 원칙을 천명하였다.


    이 처럼 트립스 협정에서 정하고 있는 목적과 원칙 규정은 한미 FTA의 지적재산권 협정에도 포함되어야 하며, 이에 더하여 ‘공공 영역의 확대와 보존을 위한 당사국의 의무와 이를 이행하기 위한 조치에 대한 규정’도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2) 목적과 원칙에 대한 분쟁 면제와 독립된 점검 기구의 설치


    앞 에서 얘기한 목적과 원칙 규정은 실체 규정에 반영되지 못하면 협정의 서문을 장식하는 입발림에 불과하다.  실제로 트립스 협정은 목적 규정과 원칙 규정이 실체 규정에 의해 제대로 뒷받침되지 못해 선언적 규정 이상이 아니라는 비판이 있다.  따라서, 위의 (1)에서 말한 ‘목적과 원칙 규정’을 실체 규정에 반영하고, 실체 규정이 ‘목적과 원칙 규정’에 위배되는지를 점검하는 별도의 독립된 기구를 설치하여야 한다.  또한 이 기구는 실체 규정이 목적 규정이나 원칙 규정에 위배된다고 판단하였을 때 실체 규정에 대한 이행 의무의 면제를 선언할 수 있는 권한을 가져야 하고, 이 선언은 곧바로 효력을 발휘하도록 해야 한다.


    또 한, 목적 규정과 원칙 규정에 따른 당사국의 조치는 다른 당사국 정부 또는 지적재산권자가 분쟁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도록 하는 면제 규정을 두어야 한다.


    (3) 트립스 협정과 공중의 건강에 대한 도하각료선언문


    2001 년 11월 14일 카타르 도하에서 발표된 세계무역기구(WTO)의 ‘트립스 협정과 공중의 건강에 대한 각료선언문’(이하 ‘도하선언문’)을 존중하고 준수한다는 내용이 총칙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도 하선언문은 (i) 회원국이 공중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트립스 협정이 방해하지 않으며 방해할 수 없다는 점과, (ii) 공중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특히 의약품에 대한 접근권을 높이기 위한 WTO 회원국의 권리를 지지하는 방식으로 협정이 해석되고 이행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는데, 선언문 제4조는 “회원국이 공중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트립스 협정이 ‘방해하지 않으며 방해할 수 없다’는 점에 합의한다1).” 라고 합의(agree)라는 문구를 사용하여 이 선언이 비엔나 협약 제3조 제3(a)항의 ‘추후의 합의2)’ 에 해당함을 재차 확인하였다3).  또한, 도하 선언문에서 “공중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WTO 회원국의 권리를 지지하는 방식으로 트립스 협정이 해석되고 이행되어야 한다”고 한 점은 트립스 협정문으로부터 반드시 명백하게 도출된다고 보기 어려운, 새로운 해석과 합의라는 점에서 도하 선언문의 또 다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요컨대, “지적재산권의 보호와 시행은 … 권리와 의무가 균형을 잡도록 기여하여야 한다”는 트립스 협정 제7조의 ‘목적’ 규정과 “회원국은 … 협정 규정과 양립하는 한 공중의 건강과 영양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채택할 수 있다”는 협정 제8조의 ‘원칙’ 규정을 함께 고려하면, ‘공중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회원국의 권리를 지지하는 방식’으로 트립스 협정을 해석하고 이행해야 하는 것이 WTO 회원국인 한국과 미국의 의무이다.


    또 한, 공중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치로서 도하선언문은, (i) 회원국은 강제실시권을 부여할 권리를 가지고 강제실시권을 부여할 조건을 결정할 자유가 있으며, (ii) 강제실시권을 부여할 수 있는 조건의 하나인 국가 비상사태나 극도의 위기상황이 HIV/AIDS, 결핵, 말라리아와 같은 유행병에 적용되고, (iii) 일정한 조건 하에서 지적재산권의 소진문제(병행수입 문제)를 각국이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강제실시나 병행수입에 대한 각국의 주권 재량을 인정한 도하 선언문의 원칙이 훼손되지 않도록 총칙 규정과 실체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


    미 국의 통상법도 도하선언문을 존중하는 것이 지적재산권 분야의 협상 목적이라고 명시하고 있으므로(19 USC §3802(b)(4)(C) “The principal negotiation objectives of the United States regarding trade-related intellectual property are - to respect the Declaration on the TRIPS Agreement and Public Health, adopted by the World Trade Organization at the Fourth Ministerial Conference at Doha, Qatar on November 14, 2001.”), 만약 미국이 도하선언문의 존중과 준수 의무를 협정문에 넣지 말자고 주장한다면, 이것은 미국이 자국의 법을 어기는 결과가 될 뿐만 아니라, 한국과 미국이 도하선언문을 이행할 의무를 져버리자고 억지를 부리는 꼴이 될 것이다.



1) We agree that the TRIPs Agreement dose not and should not prevent Members from taking measures to protect public health.



2) 조약이나 협정의 해석은 “조약문의 문맥 및 조약의 대상과 목적으로 보아 그 조약의 문맥에 부여되는 통상적인 의미에 따라 성실하게 해석하는 것”이 원칙인데, 이것은 ‘1980. 1. 27. 조약 제697호로 국내에 발효된「조약법에 관한 비엔나 협약」제3절(조약의 해석) 제31조(해석의 일반규칙) 제1항에 규정되어 있다. 한편, 비엔나 협약 31조3항에는 조약문의 문맥과 함께 ‘(a) 조약의 해석 또는 그 조약 규정의 적용에 관한 당사국간의 추후의 합의’, ‘(b) 조약의 해석에 관한 당사국의 합의를 확정하는 그 조약 적용에 있어서의 추후의 관행’을 반드시 참작하도록 하고 있다.



3) Frederick M. Abbott, The Doha Declaration on the TRIPs Agreement and the Public Health: Lightening on the Dark Corner at the WTO, Journal of International Economic Law, Oxford University Press, 200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