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해결규정에 대한 의견

    미 국-칠레 FTA, 미국-싱가포르 FTA, 미국-모로코 FTA, 미국-중앙아메리카 FTA (CAFTA), 미국-바레인 FTA, 미국-호주 FTA 등 미국이 체결한 FTA에는 지적재산권에 대한 비위반제소가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호주 FTA 제21.2조는 다음과 같다.


이 협정에서 달리 정하였거나 양 당사국이 달리 동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 협정의 해석이나 적용 또는 다음 각호에 관한 양 당사국 사이의 모든 분쟁의 조정이나 회피에는 이 장의 분쟁해결규정을 적용한다.

    (a) 다른 당사국의 조치가 이 협정에 따른 의무에 위반되는 경우,

    (b) 다른 당사국이 이 협정에 따른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 또는

    (c) 협 정과 불일치하지 않는 조치의 결과로, 제2장(내국민대우 및 상품에 대한 시장접근), 제3장(농업), 제5장(원산지 규정), 제10장(서비스에 대한 국경 무역), 제15장(정부 조달) 또는 제17장(지 적재산권) 에 따라 부여되었다고 합리적으로 기대한 이익이 무효화되거나 침해된 경우.


    여 기서 (c)항이 바로 지적재산권에 대한 비위반제소를 인정한 규정인데, 이것은 트립스 협정에 대한 회원국의 합의를 무시한 것이며, 무분별한 분쟁의 남발로 인한 주권 침해 문제가 생길 수 있는 매우 위험한 독소 조항이다.


    WTO 체제는 분쟁해결을 위한 제소를 허용하면서 (i) GATT 규범을 명백히 위반하는 행위가 있거나(위반제소: violation complaint), (ii) 어떤 체약국의 무역관련 조치나 상황이 GATT를 위반하지는 않지만 다른 체약국의 기대이익이 침해된 경우(비위반제소; non-violation complaint) 2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그런데, WTO 체제 하의 트립스 협정 제64.3조는 비위반제소가 지적재산권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 유보하고, 협정 발효일로부터 5년 이내에 트립스 이사회에서 비위반제소 문제를 검토한 후 각료회의에서 결정하는 것으로 하였다.  2005년 홍콩 각료회의까지 트립스 이사회와 각료회의는 비위반제소 문제에 대한 확정된 결론을 내지 못하였고, 그 대신 비위반 제소의 범위와 세부절차에 대해 트립스 이사회가 검토를 계속하고, 그 동안에는 트립스 협정에 따른 비위반 제소를 WTO 회원국이 하지 않는다는 합의를 하였다1).  따라서 한미FTA에서 지적재산권에 대한 비위반제소를 인정한다면 이것은 홍콩각료회의의 합의를 어기는 결과가 될 것이다.


    지 적재산권에 대한 국제조약이나 협정 등이 비위반제소와 무관하다는 점은 전문가들 사이에서 견해가 일치한다.  트립스 이사회에서 비위반제소 문제를 논의할 때에도 이것을 트립스 협정에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 나라는 단 하나 미국뿐이었다.  유 럽과 캐나다는 비위반 제소가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신중한 검토를 하기 전에는 이를 도입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으며, 모든 개도국이 지적재산권에 대한 비위반제소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미국이 비위반제소의 인정을 주장하는 주된 목적은 트립스 협정 제8조에 따라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려는 개도국 정부의 조치를 무력화하기 위한 것이다.  이처럼 일방적인 논리와 다른 국가의 공공정책을 파괴하려는 의도로 협상력이 약한 나라를 상대로 한 FTA에서 미국이 관철한 독소조항 ‘비위반제소’가 한국의 지적재산권 분야에 가능하도록 하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


    원 래 비위반제소는 상품 및 서비스 교역상의 양허표를 상정하여 고안된 것인데, 지적재산권의 보호를 실체적 내용으로 하는 트립스 협정이나 FTA의 지적재산권 협정은 이러한 양허표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비위반제소를 인정하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다.  또한, 트립스 협정과 트립스-플러스(TRIPS-Plus) 형태의 FTA2)는 권리 보호의 범위나 대상에 대한 당사국의 주권적 결정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어느 당사국의 주권적 결정으로 인한 상대국의 이익 침해나 무효화를 보완하기 위한 GATT 23:1(b)3)와 같은 조치가 필요하지도 않다.


    비 위반제소를 인정하는 WTO 규범에도 그 남용을 방지하기 위하여 엄격한 절차적 제한을 두고 있다.  즉, 협정에 위반되지 않는 어느 당사국의 조치에 대해 비위반제소를 하는 자는 제소를 정당화하는 상세한 근거(detailed justification)를 제시해야만 하고, 특정 조치가 협정 조항에 위배되지 않으면서 협정상의 이익을 무효화하거나 침해한다는 판정이 내려진 경우에도 해당 당사국이 조치를 철폐할 의무가 발생하지 않는다.4)  그러나 미국이 체결한 FTA에는 이러한 중요한 요소는 빠진 채 비위반제소를 할 수 있다는 내용만 들어 있거나, 약간의 제한을 가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5).


    비 위반제소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제소의 원인이 되는 ‘기대되는 이익의 무효화 또는 침해’의 의미와 범위가 막연하고 불분명하기 때문에 무분별한 분쟁이 가능하고, 다국적 기업들은 이 조항을 근거로 다른 나라 정부의 합법적인 조치 예를 들면, 세금 부과, 광고 규제,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한 시정 조치 등을 문제로 삼을 수 있으며, 공공의 이익을 위해 새 로운 경제, 문화, 환경, 보건 정책을 도입하는 것이나, 저작물의 공정이용을 넓게 인정하거나 특허권의 권리범위를 좁게 해석하는 법원의 판결들이 모두 비위반제소의 대상으로 될 수 있다.  또한, 일방적인 분쟁절차의 개시가 가능하기 때문에, 특허법이나 저작권법에서 인정하고 있는 권리 제한 조치들이 억제될 수 있고 다국적 기업의 제소를 피하기 위해 공공 정책이 위축되고 주권이 훼손되는 결과가 생길 수 있다.  이러한 우려는 단순한 기우가 아니다.  한국의 시민사회단체가 2001년 다국적 제약사인 ‘노바티스’를 상대로 백혈병치료제 ‘글리벡’의 특허에 대한 강제실시를 청구하였을 때, 다국적 제약사는 한국 정부가 강제실시를 허용한다면 특허권자가 기대했던 이익이 감소하고 이로 인해 WTO 하의 분쟁이 생길 수 있다는 주장을 편 바 있다6).



1) WT/MIN(05)/DEC 22 December 2005 “45. We take note of the work done by the Council for Trade-Related Aspects of Intellectual Property Rights pursuant to paragraph 11.1 of the Doha Decision on Implementation-Related Issues and Concerns and paragraph 1.h of the Decision adopted by the General Council on 1 August 2004, and direct it to continue its examination of the scope and modalities for complaints of the types provided for under subparagraphs 1(b) and 1(c) of Article XXIII of GATT 1994 and make recommendations to our next Session. It is agreed that, in the meantime, Members will not initiate such complaints under the TRIPS Agreement.”


2)  트립스 협정 보다 더 높은 지적재산권의 보호를 내용으로 하는 FTA.



3) GATT Article XXIII (Nullification or Impairment Paragraph) 1. If any contracting party should consider that any benefit accruing to it directly or indirectly under this Agreement is being nullified or impaired or that the attainment of any objective of the Agreement is being impeded as the result of (a) the failure of another contracting party to carry out its obligations under this Agreement, or (b) the application by another contracting party of any measure, whether or not it conflicts with the provisions of this Agreement, or (c) the existence of any other situation, the contracting party may, with a view to the satisfactory adjustment of the matter, make written representations or proposals to the other contracting party or parties which it considers to be concerned.  Any contracting party thus approached shall give sympathetic consideration to the representations or proposals made to it.



4) DSU 제26조 제1항.



5)  예컨대, 미국-칠레 FTA 제22.14조, CAFTA 제20.15조, 미국-호주 FTA 제21.10조는 GATT 제20조의 일반적 예외에 따른 조치는 비위반 제소의 대상이 되지 않으며, 미국-호주 FTA 제22.1(1)조는 지적재산권 분야의 비위반제소에 적용되는 분쟁해결절차를 체약국들이 수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6) TRIPs 협정은 외국의 특허권자가 그 국가의 국내법을 적용받을 때 기대할 수 있는 실질적인 특허 보호의 최소 기준을 규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특허 보호로부터 특허권자에게 주어지는 그 국가 시장에 대한 상업적 접근이라는 특정한 기대도 부여하고 있습니다. …(중략)… 특허권자가 상업적으로 자신의 특허를 사용할 수 있다는 특허권자의 기대는 TRIPs 협정에 의해 보호됩니다. 따라서, 어느 WTO 회원국이 TRIPs 협정에 근거하여 부여받을 것으로 기대했던 자신의 이익이, 타 WTO 회원국이 취한 조치에 의해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감소된다고 믿는다면, 이는 WTO 다자간 분쟁조정제도에 의해 해결될 수 있을 것입니다. 강제실시권의 허가로 인하여 특허권자의 기대가 무너지는 만큼, 강제실시권의 허가는 일반적으로 GATT 1947에 규정된 국제 무역 규칙과 불일치하게 되며, 특히 TRIPs 협정에 부합하지 않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