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적 복제

    (가) 현행 규정


    우 리 저작권법에서는 복제를 “인쇄·사진·복사·녹음·녹화 그 밖의 방법에 의하여 유형물에 고정하거나 유형물로 다시 제작하는 것을 말하며, 건축물의 경우에는 그 건축을 위한 모형 또는 설계도서에 따라 이를 시공하는 것을, 각본·악보 그 밖의 이와 유사한 저작물의 경우에는 그 저작물의 공연·실연 또는 방송을 녹음하거나 녹화하는 것을 포함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컴퓨터 램(RAM)의 저장과 같은 일시적 복제가 저작권법상 복제에 해당하는지 명확하지 않다.


    그 러나, 저작물을 보거나 듣기 위한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컴퓨터 RAM에 저장되는 것을 고정이나 재제작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렇게 저장된 저작물은 다른 명령을 실행하거나 컴퓨터의 전원을 끄면 저장이 되지 않고 자동적으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저작권법상 복제는 ‘유형물에 고정’ 또는 ‘유형물로의 재제작’으로 한정되므로, 일시적 복제는 인정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WCT 및 WPPT 조약의 경우에는 저작자나 실연자, 음반제작자는 “어떠한 방법이나 형식으로든 저작물의 복제를 허락할 배타적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어, 역시 일시적 복제 개념이 인정되는 것인지 명백하지 않다. 다만, 조약 체결 과정에서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은 ‘일시적이거나 영구적이거나’라는 표현을 삽입하려고 하였다가 제3세계 국가들과 온라인서비스 제공 통신회사들의 강력한 반대로 좌절되었으므로, WCT 및 WPPT는 일시적 복제를 복제의 개념에서 배제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나) 미국법 및 미국 체결 FTA 중 관련 규정


    미 국 저작권법도 일시적 복제가 복제임을 명확하게 규정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 저작권법은 온라인서비스제공자의 책임 제한과 관련하여 ‘일시적으로 저장하였다는 이유로 저작권 침해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어서, 간접적으로 일시적 복제도 복제로 인정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미 국이 체결한 FTA에는 저작권자 및 저작인접권자의 복제권과 관련하여 복제가 영구적이든 일시적이든 관계없이 모든 형태의 복제에 대하여 허락하거나 금지할 권리가 인정된다고 하여 일시적 복제를 명백히 인정하고 있다.


    (다) 일시적 복제 인정에 따른 문제점


    일 시적 복제를 전면적으로 인정하면, 저작권자에게 저작물에 대한 접근통제권을 부여하는 꼴이다.  일시적 복제는 디지털 환경에서 저작물을 보는 행위, 저작물을 듣는 행위에 반드시 수반되며, 저작물의 전달을 단순히 매개하는 과정에서도 일어난다.  그런데, 이러한 행위나 과정은 원래 저작권법이 통제하려고 했던 것들이 아니다.  저작권법은 저작물을 유형물로 다시 제작하거나 이 유형물을 배포함으로써 타인이 저작물을 볼 수 있도록 하거나 들을 수 있도록 하는 행위를 통제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일시적 복제를 현행 저작권법의 복제 개념에 그대로 수용하면, 애초에 의도하지도 않았던 저작물 접근 행위나 매개 행위에 대한 통제권을 저작권자에게 인정하는 결과가 된다.


    또 한 일시적 복제를 복제권 개념에 수용하지 않더라도 일시적 저장이 일어나게 하는 행위를 통제함으로써 저작권자의 권리를 충분히 보호할 수 있다.  예컨대, 서버에 저장된 소프트웨어를 클라이언트 컴퓨터로 이용할 때 클라이언트 컴퓨터의 RAM에서 소프트웨어의 일부가 잠시 저장되지만, 이러한 일시적 저장을 직접 통제하지 않더라도 서버에 저장된 소프트웨어를 클라이언트가 이용하도록 전송하는 행위를 통제함으로써 저작권자의 권리 보호가 가능하다.  또한, 스트리밍 서비스인 경우에도 서비스 제공자의 복제 행위나 전송 행위를 규율할 수 있고, 브라우징 과정에서 일시적 저장이 일어나는 경우에도 브라우징 대상이 되는 서버 컴퓨터의 저작물을 통제함으로써 권리 보호를 충분히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일시적 복제가 디지털 환경에서 점차 증가하는 저작물 이용 행위이고 이를 통제할 권한을 저작권자에게 주지 않아서 문제라는 미국의 주장은 저작권자에게 초과 이윤을 보장하자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한 편, 일시적 복제 개념을 복제로 인정하면서도 일시적 복제의 경우 면책을 광범위하게 허용하자는 의견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일시적 복제가 일반적 ‘복제’와는 그 기능이 다르므로 양자를 같게 취급하는 것 자체의 정당성이 의문스럽다.  또 지나치게 저작권자의 권리범위를 확대하여 저작물에 대한 정당한 이용마저도 제약할 수 있는데, 이를 원칙적으로 인정하고 예외적으로 면책을 두는 것은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 보장이라는 저작권법의 이념에도 맞지 않는다.


    또 한 일시적 복제를 인정한다고 하여도 저작권자에게 창작 동기가 추가된다고 보기도 어려워 저작권법 정책상 인정할 이유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