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기간 연장

    (가) 미국의 소니보노법과 이에 대한 미국내 비판


    현 재 베른협약 및 세계무역기구 트립스협정에서 요구하는 저작권 보호기간은 저작자 사후 50년이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저작권법도 개인 저작물의 경우 저작자 사후 50년간, 법인 저작물의 경우 최초 공표시로부터 50년간 저작권을 보호한다.  그러나, 미국은 1998년 ‘소니보노저작권보호기간연장법안’을 통과시킴으로써, 현재 저작권법상 저작권보호기간을 저작자 사후 70년까지, 법인 저작물의 경우 최초공표일로부터 95년으로 연장하였으며, 이 법을 토대로 싱가포르, 호주 등과 체결한 자유무역협정에서도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을 요구해 왔다.


    그 러나 소니보노법은 월트디즈니사의 강력한 로비에 의해 등장한 것으로, 입법 당시부터 미국 내에서 많은 논란이 있었다.  ‘미키마우스’의 보호기간을 연장하기 위한 법이라는 의미에서 ‘미키마우스법’이라는 조롱을 받았으며, 엘드레드 v. 애쉬크로프트 위헌소송사건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또한 소니보노법을 무력화하기 위하여 ‘퍼블릭 도메인 확대 법안(Public Domain Enhancement Act)’이 제출되기도 하였다.  한편 미국에서는 소니보노법에 대해 반대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저작권 보호기간의 단축이나 저작물별 저작권 보호기간의 차별화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높다.  미국의 스탠포드 대학의 로렌스 레식 교수는 자신의 저서 ‘Future of Ideas’에서 저작권 유효기간을 5년마다 한 번씩 갱신하는 조건으로 저작물 출판일로부터 최장 75년으로 하자고 제안하였고, 또 다른 저서인 ‘Free Culture’에서는 저작권 보호기간에는 기간이 짧을 것, 간단명료할 것, 갱신을 의무화할 것, 소급적용이 불가능할 것 등의 4가지 원칙이 있어야 함을 제시했다.  그는 여기서 1976년까지 평균적인 저작권 유효기간은 출판 이후 32.2년에 불과하므로, 이와 비슷한 수준으로 저작권 보호기간을 단축할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쓰고 있다.  또한 그에 따르면 미국의 경제지인 ‘이코노미스트’는 저작권 보호기간을 14년으로 하자는 제안을 지지했고, 미국 내에서 저작권 유효기간을 특허의 기간과 동일하게 하자는 제안도 나왔다고 한다.  이처럼 미국 내에서도 자국 내의 현존 저작권보호기간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문제제기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는 상황이고, 그 근거법이 법제정 때부터 미국 내에서 논란이 되었고 무효화 주장이 끊이지 않고 있는 문제 많은 법안에 근거하여 국내법을 변경하게 된다면 한국에서는 더 큰 문제와 논란을 야기하게 될 것이다.


    (나)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 논거 및 이에 대한 비판


    저 작권 보호기간 연장 찬성자들의 논리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저작권도 재산권에 속하는데 재산권의 일반적 성격에 비추어 보면 상당한 기간 또는 영속적인 보호기간을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며, 둘째, 보호기간을 연장하는 경우에는 그만큼 창작의 유인을 증대시킬 수 있다.  셋째, 사람의 수명이 연장되었기 때문에 보호기간을 연장할 필요가 있다.  본래 저작권 보호기간을 저작자 사후 50년으로 한 것은 저작자와 자손 2세대까지 보호한다는 의미였다.  넷째, 디지털 네트워크 등 기술발달로 인한 저작권 침해를 상쇄시키기 위하여 보호기간을 연장할 필요가 있다.


    그 러나 이에 대한 반대 논거도 많이 존재한다.  첫째, 경제적인 보상만이 창작의 동기와 유인책을 제공해주지는 않으며, 저작권 보호기간의 연장이 실제로 창작의 활성화와 연결된다는 실제적인 증거도 없다.  둘째, 대부분의 저작물에 대한 권리가 실제 저작자들이 아닌 이를 통해 상업적 이익을 취하기 위한 기업들에게 집중되어 있는 상황에서 인간 수명의 연장과 자손 2세대의 보호를 위하여 보호기간을 연장하여야 한다는 주장은 그다지 타당성이 없다.  인간의 수명이 그렇게 비약적으로 증가하지 않았으며, 실제로 미국의 보호기간 연장법이 논의되던 당시 1980년부터 1994년까지 미국인의 평균 수명은 불과 2년 증가하는 데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셋째, 보호기간 연장은 저적물을 공공영역화하는 시기를 지연시켜 이를 이용하려는 이용자들은 저작권자를 찾고 교섭을 하는 데 드는 비용을 부담해야 하므로 공익적 가치에 반한다.  또한, 2차적 저작물을 만드는 것을 방해하여 문화의 다양성을 저해하게 된다.  실제로, 미국-호주 FTA 당시 호주의 ‘Allan Consulting Group’이 작성한 보고서에는 보호기간 연장으로 인한 비용(costs)적 측면으로 1) 공유영역 감소로 전체 사회후생이 감소한다는 것(Deadweight Costs), 2) 보호기간이 증가함에 따라 저작권자를 찾기 위한 추적 비용(Tracing Costs)이 증가한다는 것, 3) 보호기간이 증가함에 따라 권리 입증에 관한 증거들이 소실되어 저작권의 집행 비용(Enforcement Costs)이 증가한다는 것, 4) 저작권자에게 지나치게 이익을 부여한다는 것, 5) 저작권 수입국인 호주의 무역수지를 악화시킨다는 것, 6) 저작권의 지나친 보호는 자원 분배의 왜곡을 가져온다는 것, 7) 정부 정책을 이용하여 저작권의 독점을 강화하려는 지대추구 비용이 증대한다는 것(Rent-Seeking Costs), 8) 저작권의 독점적 성격의 강화로 독점 비용이 증대한다는 것 등을 들고 있으며, 경제적 효과분석의 결과 호주 저작권자들에게는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에 대한 반대


     보호기간 제한의 취지


    소 유권과 달리 저작권의 보호기간을 제한적으로 규정한 것은 인류공동의 자산이라는 저작물의 성격에 기인한다.  저작물은 저작자의 창작적 노력의 소산이지만 저작물의 창작 과정은 선인들이 쌓아 놓은 문화 유산을 바탕으로 한 것이고 저작자가 창작한 저작물은 그것이 공표됨에 따라 다시 후세의 사람이 이용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더 많은 새로운 저작물을 낳는 결과가 생긴다.  이렇듯 저작물은 인류공통의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저작권자에게 아무런 시간적 제한없이 저작물의 독점적 이용권을 부여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저작권 보호기간을 두는 취지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저작권자를 보호하여 창작을 유인함과 동시에 그 기간이 지난 후에는 저작물을 공공 영역에 편입시켜 새로운 창작의 토대를 풍부하게 하려는 것이다.


     보호기간 설정 기준


    그 렇다면 어느 정도의 보호기간이 타당한가?  보호기간은 각 국의 문화 수준, 보호기간을 정한 취지, 저작물의 성격을 고려하여 결정해야 한다.


    저 작권 보호의 본래 목적은 저작권 보호를 통한 각 국의 문화발전에 있으므로 보호기간의 설정도 각 국의 문화 정책적 판단이 필요한 영역이다.  따라서 저작권 보호기간은 각 국의 문화 발전 수준에 따라 달리 정하여 지는 것이며, 조약을 통해 각국에서 일률적인 보호기간을 정하도록 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그러므로 조약에 의하여 보호기간을 정하더라도 각 국간 최소보호기간을 정하고 그 외의 연장 여부는 각 국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하여야 한다.


    또 한, 보호기간을 정하는 데에는 그 보호기간을 둔 근본적인 취지를 고려하여, 저작권자에게 충분한 창작적 동기를 부여할 수 있으면서도 저작물이 공중에 의하여 이용될 가치가 있는 기간 내에 저작권 보호기간이 만료될 필요가 있다.  이용 가치가 없어져 버린 저작물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는 것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저 작물은, 음악, 미술, 문학, 학술, 소프트웨어, 건축 등 분야와 형식이 다양하여 보호기간을 저작물에 따라 각기 달리 설정할 필요가 크다.  가령 소프트웨어는 문학저작물보다는 더 짧은 기간으로 보호하여야 한다.  소프트웨어의 경우 기술주기가 단축되고 있어서 이윤의 회수기간도 매우 짧고 또한 저작자 사후 50년이라는 장기간이 지나고 나서는 전혀 필요 없는 것이 되어버려 공공영역으로 편입시킬 실익마저 잃게 될 것이다.  그러니 소프트웨어를 저작자 사후 50년간 보호한다는 것은 보호기간의 제한이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보호기간을 단축해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다시 20년간 보호기간을 연장한다는 것은 소프트웨어뿐만 아니라 다른 저작물에 대해서도 보호기간을 영구화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보호기간 연장의 본질


    미 국이 저작권 보호기간을 연장하게 된 계기를 보면 보호기간 연장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함의가 좀 더 분명해 질 것이다.  저작권 보호기간이 연장된 것은 미키마우스의 보호기간을 연장하기 위한 월트디즈니사의 로비 때문이었다.  출판 시장을 돌아보면, 출판한지 10년 안에 거의 대부분의 출판물이 절판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류열풍을 타고 상품화되는 가요나 영화도 대부분은 판매된 지 수년 내에 경제적으로 가치있는 저작권 보호기간은 종료되고 만다.  그렇다면 저작자 사후 수십년 동안 저작물을 보호한다는 것은 대부분의 저작물의 경우에는 무의미한 것이다.  예외는 있다.  수백년에 걸쳐 팔리는 세계적 문학작품이나 미술작품의 경우에는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에 따른 혜택을 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작품은 저작권 보호기간의 연장에 의해 창작의욕이 촉진되어 나타날 수 있는 결과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그와 같은 위대한 정신적 산물이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이라는 경제적 기대를 통해 생산되리라는 것은 코미디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이러저러한 찬성 논거에도 불구하고, 결국 저작권 보호기간을 저작자 사후 50년에서 사후 70년으로 연장하는 진정한 이유는 월트디즈니사와 같은 미국 문화자본이 세계 각국으로부터 거두어들이는 로열티의 회수기간을 연장하기 위한 것이다.  미국의 초국적 문화자본의 이익을 위하여 우리 사회의 문화정책을 희생할 수 없다.  몇 가지 예외적인 저작물의 보호를 위하여 대부분의 저작물의 사용을 금지하는 것은 비경제적이며, 문화발전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다. 


    따 라서 우리는 저작권 보호기간의 연장에 반대하며, 오히려 저작물에 따라 저작권 보호기간을 차별화하여 대폭 단축하자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