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실시권 요건 제한

    (가) 강제실시의 범위와 현행 법률 규정


    특 허발명의 강제실시를 ‘특허권자의 의사에 상관없이 타인이 특허발명을 실시하는 것’으로 넓게 이해하면, (i) 법률 규정에 의한 강제 실시(선사용에 의한 통상실시권 등), (ii) 행정기관의 결정에 의한 강제실시(ex officio license), (iii) 정부사용을 위한 강제실시(특허법 제106조)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강 제실시제도는 특허권을 제한하여 특허권자의 허락없이도 행정처분 등에 의하여 특허발명을 제3자나 정부가 사용할 수 있게 함으로써 공익과 사익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제도이다.


    위 3가지 강제실시 중 (ii), (iii)의 강제실시와 관련된 조약과 국내법을 살펴본다.  산업재산권 보호에 관한 파리협약(1883년)은 특허권자에게 특허발명의 실시 의무를 부과하여, 특허권자가 특허발명을 실시하지 않거나 그 실시가 불충분한 경우 특허권 남용이라고 보고, 권리자의 허락없이도 특허발명을 타인이 실시할 수 있도록 규정하였다.  트립스 협정은 강제실시를 부여할 수 있는 요건은 한정하지 아니하고, 강제실시권을 발동할 때 부가하여야 하는 조건만을 규정하고 있다(유일한 한정은 반도체 기술에 대해서만 적용된다).  그 중 강제실시는 국내 수요를 주목적으로 해야 한다는 조건과 관련해서는 지난 2002년 WTO 도하각료회의의 선언과 2003년 WTO 일반이사회의 결정에 따라 의약품 생산시설이나 능력이 없는 국가에게 수출할 목적으로도 강제실시를 허용할 수 있도록 트립스 협정이 개정되었다.  우리나라 현행 특허법은 3년간 계속 불실시, 국내 수요 불충족, 특허발명의 실시가 공익상 특히 필요한 경우, 불공정경쟁 행위의 시정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 의약품 생산능력 없는 국가로 수출하기 위한 경우에 강제실시권을 설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나) 미국의 예상 요구 사항


    미 국-호주 FTA, 미국-싱가포르 FTA 중 강제실시권에 관련된 규정을 보면, 강제실시권 설정 요건을 3가지로 제한하고 있다.  첫째, 행정절차나 사법절차에서 불공정행위로 판정된 행위를 시정하기 위한 경우, 둘째, 공공의 비상업적 사용의 경우, 셋째, 국가 비상사태 기타 극도의 긴급상황의 경우에만 강제실시가 가능하다.  또한 위 둘째, 셋째의 경우 특허권자에게 특허발명과 관련된 비공개 정보나 기술적 노하우를 제공할 의무를 부담시켜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 미국 FTA 중 강제실시 규정의 문제점


    미 국이 체결한 FTA 협정문은 ‘권리자의 허락 없는 특허발명 이용의 허락(permit the use of the subject matter of a patent without the authorization of the right holer)’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이것은 우리 특허법의 정부 사용(제106조), 통상실시권의 재정(제107조) 뿐만 아니라, 심판에 의한 통상실시권(제138조)과 법정 실시권까지 다 포함한다.


    이 처럼 다양한 목적과 법리에 따라 인정되는 특허발명의 강제실시가 미국이 주장하는 단 3가지 경우에만 가능하도록 그 범위가 대폭 축소되면, 지금까지 인정해 오던 모든 법정 실시권을 폐지해야 하며 관련 공공정책의 실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또한, 도하각료회의를 통해 전세계 국가가 합의하였던, 의약품 수출을 위한 강제실시도 불가능하게 되며, 특허권자의 특허 불실시나 불충분 실시의 경우에도 그러한 권리남용을 제재하기 위한 강제실시가 불가능해지고, 뿐만 아니라 국가 비상사태에 이르지 않는 한,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강제실시가 필요한 경우조차 특허권자의 허락을 받지 않고는 발명을 사용할 수 없는 결과가 된다.  공공의 이익을 위한 실시의 경우 비상업적인 실시는 허용되는 것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무엇이 ‘비상업적’인가는 불분명하다.  어떤 발명이든지 정부가 국영기업을 세워서 실시할 수는 없다.  사기업도 실시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사기업은 어느 정도의 이윤이 남지 않는다면 이를 실시할 수 없다.  따라서 완전히 비상업적인 실시만을 요구한다면 공공의 이익을 목적으로는 강제실시가 불가능한 것이며, 어느 정도의 이윤이 보장되는 강제실시라고 한다면, 어디까지가 비상업적인가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 있고 이는 무역분쟁의 단초가 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사실상 공익상 필요한 경우조차 강제실시가 불가능해 진다.


    특 허권자에게 비공개정보나 기술적 노하우 정보를 제공할 의무를 부담시킬 수 없게 규정한 점은 강제실시제도의 실효성을 크게 흔들어 놓을 것이다.  강제실시 제도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으려면, 생산하려고 하는 일정한 물건에 어떠한 권리가 존재하는지와 특허 명세서에 공개된 것 이외의 기술 정보를 추가로 공개할 필요가 있을 수 있다.  기존에도 특허권자 스스로 권리를 신고하게 하거나 특허명세서에서 충분히 개시되지 않은 정보의 공개를 요구할 수 있도록 강제실시 절차를 개선하고자 하는 주장이 있었다.  그러나 미국-호주 FTA와 미국-싱가포르 FTA의 내용을 보면 그러한 입법의 가능성을 아예 차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