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청과 식약청 연계
(가) 조약과 국내법의 내용
특 허와 관련된 어떠한 조약에도 특허청과 식약청이 업무를 연계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한국의 법률 어디에도 이러한 업무 연계를 정하지 않고 있다. 즉, 식약청이 의약품의 품목허가를 하는 과정에서 특허를 침해할 우려가 있는지를 조사할 어떠한 의무도 없다. 오히려 트립스 협정과 특허법은 특허권을 사적 권리로 정하고 있으므로, 어느 의약품이 특허를 침해하였는지 여부를 조사할 의무는 특허권자 개인에게 있다.
(나) 미국의 예상 요구와 문제점
미 국은 수년 전부터 한국 식약청과 특허청의 연계가 부족하고, 그로 인하여 특허를 침해한 의약품이 판매 허가를 받는 문제가 있다는 주장을 해 왔다. 따라서 이 사안은 이번 한미 FTA에서 미국이 강하게 요구하는 사안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식 약청이 의약품 허가 업무를 하는 과정에서 특허 침해 여부를 조사할 수 없는 이유는 크게 2가지다.
첫 째, 특허 침해 여부는 식약청의 고유 업무와 아무런 관련이 없고 따라서 식약청은 그러한 업무를 할 능력이 없으며 특허 침해를 판단할 업무 능력을 갖출 필요도 없다. 어느 의약품이 특허를 침해했는지 여부는 특허청은 물론 법원 조차도 쉽게 판단할 수 없는 매우 어려운 사안이다. 따라서, 특허권자가 일방적으로 제출하는 정보만을 믿고 식약청이 의약품의 허가를 거절하도록 한다면, 이것은 ‘눈먼 경찰’을 만드는 꼴이다.
둘 째, 등록된 특허의 유효성을 신뢰할 수 없다. 즉, 특허청에 의해 등록된 특허권 중 상당수가 나중에 무효로 판정나며, 특허권자가 제기한 침해 주장이 잘못된 것이라고 판단되는 사례가 매우 많다.
먼 저 한국의 사례를 살펴보자. 한국 특허청이 심사를 하여 등록을 하기로 판단한 경우라도 제3자가 이의신청을 하여 등록을 다툴 수 있는데, 1997년부터 2003년까지 이의신청이 제기된 2,491건 중 무려 34%인 854건에 대해 이의신청이 받아들여져 특허청 심사관이 잘못 판단했다는 결론이 나왔다. 또한, 특허청의 심사를 거쳐 유효하게 등록된 권리에 대해서 무효심판을 제기하여 등록권리를 무효로 한 비율은 2002년 통계를 기준으로 전체 1,401건 중 503건(36%)에 달하고, 이 가운데 특허와 실용신안은 1,258건 중 380건(30%)이 무효로 되었다. 특허권의 등록은 권리의 효력이 생기도록 하는 전제 조건이고 일종의 공시제도로 제3자는 등록원부에 기재된 사항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부동산 등기제도를 이에 비견할 수 있는데, 특허청이 엄격한 심사를 거쳐 등록해 주었다고 하는 권리의 무려 30%가 사실은 잘못 등록된 현실은 특허등록 제도 자체의 신뢰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보여준다.
이 처럼 등록특허의 유효성에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특허권자가 권리침해를 이유로 제기한 소송에서도 특허권자가 패소한 사건이 훨씬 더 많다. 법무부가 발행한 2005년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적소유권침해 민사본안 사건(1심 법원)에서 처리한 87건 중 지적소유권자가 이긴 사건은 원고승 2건, 원고일부승 17건으로 모두 19건인 반면, 지적소유권자가 패소한 사건은 무려 21건에 달한다. 또한, 특허권 침해를 이유로 한 형사 사건에서도 전체 18건 중 1건 유기, 3건 재산형으로 겨우 4건에 대해 특허권 침해가 인정되었지만, 33%에 달하는 6건이 무죄로 판결나 특허 침해 주장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와 같이 등록특허의 유효성과 특허권자의 주장을 믿을 수 없다는 점은 미국이 더 심각하다. 미국의 지방법원과 연방순회법원에서 1989년부터 1996년까지 18년 동안 239건의 특허침해 소송에서 다룬 299건의 특허 중 무려 46%가 무효로 되었다1). 이처럼 특허 유효성의 문제는 의약품 특허인 경우에 더 심각하다. 미국의 연방무역위원회(FTC)의 조사2)에 따르면, 2002년 6월 1일 법원의 판결이 난 의약품 특허의 침해소송 사건에서 무려 73%의 사건에서 특허권자가 패소하였다. 이 가운데, 특허침해가 아니라는 판단이 56%이고 특허가 무효라는 판단이 46%이다. 또한, 지방법원에서 특허가 무효라고 한 판결이 연방고등법원에서 파기된 것은 8%에 지나지 않는다. FTC의 이 자료는 제네릭 제약사가 특허가 존재하는 의약품과 동일한 의약품을 품목허가 신청한 것에 대해 특허권자가 제기한 특허침해 소송의 결과이다(특허권자는 제네릭 제약사의 104건의 허가 신청에 대해 72%에 달하는 많은 건수의 침해소송을 제기했다).
이 처럼 미국이 요구하는 특허청-식약청 연계와 직접 관련된 자료만을 보더라도 특허의 유효성을 신뢰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는 특허 침해가 아닌 것을 품목 허가조차 하지 않음으로써 이로 인한 비용을 제네릭 제약사 또는 사회 전체가 부담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한국을 상대로 특허청과 식약청의 업무 연계가 부족하여 문제라는 주장을 반복할 것이 아니라, 등록특허의 형편없는 품질로 인해 생기는 자국의 문제를 개선할 노력부터 해야 할 것이며, ‘눈먼 경찰’을 강요하는 억지 주장으로 자국 제약사의 이익만 대변하는 행태를 중단해야 할 것이다.
1) John R. Allison & Mark A. Lemley, "Empirical Evidence on the Validity of Litigated Patents" (July 1998). Available at SSRN:
http://ssrn.com/abstract=118149
2) Federal Trade Commission, Generic Drug Entry: Prior to Patent Expiration: An FTC Study, July 2002, page 13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