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행수입 금지

    (가) 병행수입의 의미


    병 행수입이란 동일한 특허권이 여러 나라에 존재하는 경우, 어느 한 나라에서 특허권자가 적법하게 유통한 특허품을 제3자가 다른 나라로 수입하는 것을 말한다. 원래 특허권자가 특허품을 판매하여 이득을 취하였다면 그 특허품에 대해 다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특허품을 판매하여 이득을 취하는 순간 특허권은 소모 또는 소진(exhaustion)되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권리 소진의 범위를 한 나라로만 제한할 것인가 아니면 국경을 무시한 국제소진을 인정할 것인가에 있다.


    미 국은 특허독립의 원칙을 들어 병행수입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대다수의 학자들은 특허독립의 원칙이란 타국의 특허권과 자국의 특허권이 서로 독립하여 존재한다는 원칙일 뿐 자국의 특허권의 효력을 결정할 때 타국에서 생긴 사정을 감안하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한다.  병행수입을 금지하면 특허권을 이용한 국제적 시장분할을 인정하고 내외 가격차에 의한 초과이윤의 획득을 국가가 보장하는 결과가 된다는 것이다.


    (나) 국제조약의 내용과 국내 실무


    트 립스 협정문은 병행수입에 대해 소극적인 규정을 두고 있다.  즉, 트립스 협정 제6조는 “이 협정에 관한 분쟁해결에서 이 협정의 어떠한 규정도 지적재산권의 소진에 관한 문제를 취급하는 데에 사용할 수 없다”고 하여 병행수입을 인정할 것인지 인정하지 않을 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취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2001년 11 월 14일 카타르 도하에서 발표된 세계무역기구(WTO)의 ‘트립스 협정과 공중의 건강에 대한 각료선언문’(이하 ‘도하선언문’) 제5(c)항은 병행수입을 허용할 것인지는 주권국의 재량에 따라 자유롭게 정할 수 있다는 점을 천명하였다1).  다시 말하면 어떠한 경우에 병행수입을 허용하고 금지할 것인지는 당사국의 주권에 속하는 사항이다.


    특 허품의 병행수입에 대해 국내 법률에는 명문의 규정이 없으며 판례도 없다2).  다만, 상표품의 병행수입에 대해서는 여러 고시가 있다.  1995년말 재정경제원이 주관하여 관세법 제235조에 따라 만든 “지적재산권 보호를 위한 수출입통관 사무처리에 관한 고시”는 (i) 국내외 상표권자가 동일인이거나 계열회사, 수입대리점 관계 등 동일인으로 볼 수 있는 경우, (ii) 외국의 상표권자가 동일인 관계에 있는 국내 상표권자로부터 전용사용권을 설정받은 경우에는 상표품의 병행수입을 허용하고 있다.  또한, 1999년 식품의약품안전청은 “화장품 병행수입 제도 업무지침서”를 만들어 화장품의 병행수입 허용기준과 수입신고 절차를 만든 바 있다.  한편, 공정거래위원회에서 1999년에 만든 “병행수입에 있어서의 불공정거래행위의 유형 고시”는 ‘상표품’에만 적용되는데, 판매업자에게 병행수입품을 취급하지 않는 조건으로 거래하는 경우 등 병행수입을 방해하는 행위를 불공정거래행위로 정하고 있다.


    이 러한 상표품의 병행수입에 대해 적용되는 고시의 내용들은 대체로 특허품의 병행수입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으로 해석된다.  즉, 수출국과 수입국의 특허권자가 다른 경우에는 병행수입이 금지되지만, 수출국과 수입국의 특허권자를 동일인으로 볼 수 있는 경우에는 병행수입을 허용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며, 전용실시권이 설정되어 있는 경우에도 병행수입을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 병행수입 인정의 필요성


    특 허품의 병행수입은 최대한 넓게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왜냐하면 법 이론상 국제소진론이 더 타당하며, 특허권자가 국경을 넘어 이중으로 이득을 취하도록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한, 특허권의 국제소진론을 적용하여 특허품의 병행수입을 인정하면 소비자는 가장 싼 물품이나 상품을 수입할 수 있고 결국 가격이 하향 평준화되어 소비자의 이익에도 부합할 뿐만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무역자유화라는 개념에도 더 적합하다.


    한 미FTA와 관련하여 더욱 중요한 점은 특허품의 병행수입을 허용할 것인지 말것인지는 미국과 협상을 하여 정할 사안이 아니라 국내의 사정을 고려하여 한국이 자유롭게 결정할 사안이라는 것이다.  또한, 아래에서 살펴보는 것처럼 미국이 병행수입을 고집하는 것은 미국의 법에도 어긋나고 자국민이 값싼 약을 병행수입해 먹을 수 있도록 하려는 미국 의회의 조치와 비교할 때 터무니없는 이중잣대에 해당한다.


    (라) 의약품의 병행수입과 미국 법률의 규정


    미 국에서 2005년 11월 22일 발효된 ‘Science, State, Justice, Commerce, and Related Agencies Appropriations Act’3)는 2006년 회계연도(2006년 9월 30일까지)에 미국 법무부, 국무부, 상무성, 과학기술부가 집행할 수 있는 총 579억불의 세출 예산액에 대한 법률이다.  이 법의 제631조는 다음과 같다.


    새 로운 쌍무협정이나 다자협정에서 (1) 미국-싱가포르 FTA의 제16.7조 제2항 규정, (2) 미국-호주 FTA의 제17.9조 제4항 규정, (3) 미국-모로코 FTA의 제15.9조 제4항 규정을 도입하는 데에는 이 법에 따른 어떠한 예산도 지출할 수 없다.(None of the funds made available in this Act may be used to include in any new bilateral or multilateral trade agreement the text of - (1) paragraph 2 of article 16.7 of the United States-Singapore Free Trade Agreement; (2) paragraph 4 of article 17.9 of the United States-Australia Free Trade Agreement; or (3) paragraph 4 of article 15.9 of the United States-Morocco Free Trade Agreement.) 


    여 기서 인용하고 있는 (1) 미국-싱가포르 FTA의 제16.7조 제2항, (2) 미국-호주 FTA의 제17.9조 제4항 규정, (3) 미국-모로코 FTA의 제15.9조 제4항 규정은 모두 특허품의 병행수입을 금지하는 규정들이다.  예컨대, 미국-호주 FTA의 제17.9조 제4항은 “각 당사국은, 최소한 특허권자가 계약이나 기타 다른 수단으로 수입에 제한을 가한 경우에는, 특허 물건의 수입을 금지하거나 특허 방법의 결과물의 수입을 금지하는 특허권자의 권리가 당사국 영토 밖에서 이루어진 물건의 판매나 배포로 인해 제한되도록 할 수 없다.”고 되어 있으므로, 특허권의 국제소진을 부인하여 병행수입을 금지하는 규정이다.  따 라서 미국무역대표부는 2005년 11월 22일 이후에 논의되는 FTA 협상에서 상대국에게 병행수입의 금지를 요구할 수 없으며, 만약 미국이 이런 요구를 한다면 이것은 자기 나라의 법률을 위반하는 결과가 된다.  미국은 2001년 연방고등법원이 Jazz Photo 사건에서 병행수입을 금지하는 판결4)을 한 이후, 쌍무협정을 통해 다른 나라에 병행수입의 금지를 강요하고 있으나 더 이상 이런 강요를 할 수 없게 되었다.


    미 국 의회가 이런 조치를 취한 것은 FTA 협상 결과가 자국법과 충돌하는 문제를 예상했기 때문이다.  즉, 미국의 상원 의원들이 2004년에 발의한 “의약품의 시장 접근과 안전에 관한 법률(Pharmaceutical Market Access and Drug Safety Act of 2004)”5)은 특허권의 소진(특허품의 병행수입) 문제를 직접 언급하면서 “특허의약품이 특허권자에 의해 또는 특허권자로부터 허락을 받은 자에 의해 외국에서 먼저 판매된 경우에는 그 특허의약품을 미국으로 수입하는 행위나 미국 내에서 사용, 판매하는 행위는 특허권의 침해가 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6).  이 법안은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 양당의 지지를 받고 있는데7), 이것은 다른 OECD 국가로부터 값싼 의약품을 병행수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고 미국 의회의 이러한 노력은 지속될 것이라고 한다.


    그 런데, 미국 무역대표부는 미국이 호주와 체결한 FTA에서 특허품의 병행수입을 금지하고 있으므로 의약품의 병행수입을 허용하는 입법이 불가능한지의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변함으로써 미국 특유의 이중 잣대와 일방주의를 드러내고 있다.


    “No. The FTA reflects current law in the United States. Nothing in this FTA or any other trade agreement prevents Congress from changing U.S. law in the future. Even if a dispute settlement panel found the U.S. acted inconsistently with the FTA, it could not require Congress to amend the law. Importantly, provisions in the FTA protecting patent holder's rights only apply to products under patent. This provision would have no impact on importation of non-patented (generic) prescription drugs.8)


1) The effect of the provisions in the TRIPS Agreement that are relevant to the exhaustion of intellectual property rights is to leave each member free to establish its own regime for such exhaustion without challenge, subject to the MFN and national treatment provisions of Articles 3 and 4.



2) 특 허권의 국제소진을 이유로 1982년 항암제 약품인 아드리아 “마이신”의 병행수입을 허용한 사례가 있다고는 한다. (윤미경․이성미 “병행수입에 대한 WTO TRIPS 논의정책연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2001년)


3) Public Law No: 109-108, H.R.2862

http://legislative.nasa.gov/Legislation/PL109-108.pdf


4) Jazz Photo v. ITC, 264 F.3d 1094 (Fed. Cir. 2001)



5)  

http://dorgan.senate.gov/newsroom/extras/042104DrugReimportBill.pdf



6) It shall not be an act of infringement to use, offer to sell, or sell within the United States or to import into the United States any patented invention under section 804 of the Federal Food, Drug, and Cosmetic Act that was first sold abroad by or under authority of the owner or licensee of such patent.



7) Frederick M. Abbott, "Intellectual Property Provisions of Bilateral and Regional Trade Agreements in Light of U.S. Federal Law", February 2006 UNCTAC - ICTSD Project on IPRs and Substantial Development 13면 참조.


8) U.S.-Australia Free Trade Agreement -- Questions and Answers About Pharmaceuticals, July 8, 2004

http://www.ustr.gov.Document_Library/Fact_Sheets/2004/U.S.-
Australia_Free_Agreement_--_Questions_Answers_Pharmaceuticals.html
[Abbott: 2006]에서 재인용